대한민국 재벌 1위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이 20대 시절, 밤마다 도박판을 전전하던 '노름꾼 백수'였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당시 마을 어르신들마저 혀를 차던 20대의 이병철 그가 빠진 노름은 무엇이었을까요?
1. 조선판 '하이엔드 프리미엄 도박', 골패
1930년대 중반, 와세다대를 다니다 몸이 아파 중퇴하고 고향 경남 의령으로 돌아온 20대 이병철. 명문가 집안의 금수저였지만, 유학 중단 후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밤마다 마을 사랑방을 전전하며 '골패'라는 도박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골패는 아무나 치는 화투나 주사위 놀이가 아니었습니다.
- 동물의 뼈나 상아로 만들어 패 자체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쌌고
- 규칙이 워낙 까다로워 고도의 수싸움이 필요했던 '양반가 도련님 전용 고급 노름'이었습니다.
이 말인즉슨, 의령·진주·함안 일대에서 골패 판에 모이는 인원은 동네 최고 재력가 집안의 청년 자제들로 정해져 있었다는 뜻입니다.
2. 얽히고설킨 운명적 인연
-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 LG의 창업주 구인회
- 효성의 창업주 조홍제
이 세 사람은 사업을 하기 전부터 이미 엄청나게 얽혀 있었습니다.

- 이병철 X 구인회: 의령 출신 이병철이 신학문을 배우러 남강 건너간 곳이 진주 지수보통학교. 거기서 동갑내기 구인회를 만나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했습니다.
- 구인회 X 조홍제: 초등학교를 마친 구인회가 서울 중앙고보(고등학교)로 유학 갔을 때 만난 학교 선배가 바로 함안의 대지주 가문 출신 조홍제였습니다.
- 이병철 X 조홍제: 의령과 함안은 신작로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 동네. 유학파 출신이라는 공통점으로 청년 시절부터 끈끈하게 어울렸습니다.
3. 남강 변 사랑방의 유쾌한 상상
1930년대 중반, 이병철이 의령 생가에서 밤새 골패를 치며 방황하던 바로 그 시기. 남강 건너 진주에는 이미 '포산상회'라는 포목점을 차려 돈을 벌던 20대 구인회가 있었고, 바로 옆 함안에는 일본 주오대를 졸업하고 돌아와 가산을 관리하던 조홍제가 있었습니다.
지리적으로나 신분으로나 엮일 수밖에 없던 세 사람. 만약 어느 날 밤, 남강 변의 한 사랑방에 모여 앉아 골패를 쳤다면 이런 풍경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병철: "홍제 형님! 오늘 밤은 끝까지 한번 달려봅시다!" (골패 패를 섞으며)
조홍제: "병철아, 적당히 해라. 너 그러다 집안 기둥뿌리 뽑힌다."
구인회: "난 내일 새벽 마산 항구에 포목 떼러 가야 하니 먼저 일어난다!"
4. 골패 판을 빠져나와 한국 경제의 거목으로
물론 이병철은 밤새 골패를 치고 들어온 어느 새벽, 달빛 아래 잠든 자식들의 조그만 발가락을 보고 번뜩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도박판을 단칼에 끊어낸 이병철은 부친에게 받은 쌀 300석으로 마산에 정미소를 차리며 첫 사업에 뛰어듭니다. (재미있게도 그 마산은 이미 친구 구인회가 물건을 떼러 매일 들락거리던 상업 거점이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이병철이 서울에서 삼성물산공사를 세우며 전국구 사업으로 세를 넓힐 때 자금이 모자라 애를 먹자, 당시 삼성 자본금의 70%에 달하는 거액을 선뜻 꽂아주며 구원투수로 등판한 인물이 바로 청년 시절을 함께 보낸 함안의 조홍제 형님이었습니다.
시골 마을 사랑방에서 골패 패를 만지작거리며 인생을 고민하던 세 청년.
그들이 도박판을 빠져나와 각자의 사업판으로 뛰어든 순간, 오늘날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삼성, LG, 효성이라는 거대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